거짓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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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 지음
배지선 옮김

분야: 인문/철학
128쪽 / 130mm × 190mm
정가 10,000원
발행일 2019년 3월 1일
ISBN | 979–11–86921–68-5 03160

데리다, 거짓말을 말하다
오늘날 일반인은 물론이고, 정치가, 언론인, 법조인, 학자들도 너무도 쉽게 거짓을 말한다. 언론이 페이크 뉴스에 속아 거짓을 보도하는가 하면, 다수 정당에서 거짓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적 주장을 공식 발표하기도 한다. 데리다가 생전에 진행한 세미나를 엮어 출간한 이 책은 거짓말이란 무엇인지,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몽테뉴, 루소, 칸트, 아렌트, 코이레 등 철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고, 특히 아렌트의 관점을 중심으로 거짓이 진실을 모방하기보다 아예 대체해버린 오늘날 거짓말의 특징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아울러 1995년 8월 15일 일본이 과거에 식민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에 저지른 잘못을 사과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발언을 세밀히 분석하면서 그것이 ‘일본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음을 질타한다.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짓을 말하는 자는 단지 거짓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거짓말은 선택이며 의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거짓말의 정의는 그리 간단치 않다. 자기 말을 자신도 믿고, 남을 속이려는 의도 없이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한다면, 그가 거짓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심지어 참말을 하면서도 타인을 속이기 ‘원한다’면 그는 거짓말하는 것이지만, 자기가 하는 말을 자신도 믿는다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자신에게 거짓말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루소는 타인이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 유명한 위조화폐 사례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아무것도 빚진 것 없는 사람에게 위조 화폐를 준다면, 그는 상대를 속이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거짓이라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루소는 거짓말의 결과로 입게 되는 피해에 주목했다.
하지만 칸트는 누군가가 아무것도 훔치지 않더라도 상대를 속인다면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타인에게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진실해야 하고, 그 진실성의 전제하에 언어도 사회도 존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데리다는 누군가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누군가가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구조적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내가 말한 것은 참이 아니지만 나는 선의에서 그렇게 말했을 뿐 속이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상대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은 내가 말하려던 바가 아니다, 그것은 내 의도가 아니었고, 당신이 오해한 것이다’라고 말할 때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거짓말이 어떤 사실이나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어떤 정해진 범주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하기’라고 부르는 행위를 원해서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무엇이 거짓말인가’라고 묻기보다는 ‘거짓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거짓말할 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의도적’ 행위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자신이 말하는 바가 틀렸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특정한 상대에게 ‘믿게 하겠다’는 계략이며 그렇게 상대를 속이고, 해를 끼치고, 기만할 목적의 행위라는 것이다. 거짓말은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는 확인된 사실에서 어떤 사건을 만들고, 믿음의 효과를 발생하려고 하므로 진실의 약속을 배반하는 순간에조차 진실의 약속을 암시하고, 상대에게서 자신에게 유리한 실질적인 변화를 얻어내려고 한다.

거짓말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성찰
아렌트는 역사 다시 쓰기와 이미지 생산, 광범위한 정치적 여론 조작과 거짓을 경고하면서 거짓말은 거의 모든 사람이 이미 아는 사실을 효율적으로 다룬다는 점에 주목한다. 거짓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예전 방식과 달리 사실의 이미지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조작하기보다 진짜를 완벽히 대체하는 가짜를 내놓고, 현대 기술과 대중매체를 이용해서 진짜라면 결코 그럴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노출한다. 이런 이유로 대체 이미지는 이제 더는 원본을 가리키지 않고, 재현물에서 대체물의 지위로 옮겨가며 대체물을 더 많이 가리키고, 현대적 거짓말 과정은 진실의 은폐가 아니라, 현실의 파괴 혹은 원본 자료의 파괴로 완성된다. 달리 말해 전통적 거짓말과 현대적 거짓말의 차이는 ‘은폐하다’와 ‘파괴하다’의 차이라는 것이 아렌트의 분석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
데리다는 1995년 8월 15일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죄한 발언을 ‘단어 하나하나 따져보고 또 그 실질적인 구조도 가늠’하면서 매우 예리하게 비판한다. 그는 무라야마가 “일본이라는 국가를 직접적인 책임 주체로 지목하지도 않고, 제국적 정체성의 영속성에 천황을 개입시키지도 않으면서 고해 형식으로 진실을 말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과 “역사에 저질러진 실수”에 대해 무라야마는 오로지 자기 개인 이름으로 사과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또한 무라야마가 ‘식민주의적’ 탄압을 언급하면서 “이 역사의 희생자가 된 국내외 모든 분께 깊은 애도를 표하고자 합니다.”라고 고백하는데, 이 고백은 단지 진실로 보이고자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약속처럼 진술되고, 과업을 완수할 책임을 선언하고, 미래를 위해 약속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라야마는 “우리 과제는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음 세대에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는 데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 효과를 완화하고자 ‘과오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를 성격이 다른 ‘실수의 언어’와 결합하는데 이는 국가와 민족 개념이 지금까지 이 개념의 구성적이고 구조적 특징이었던 것, 즉 선의, 양심과 분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