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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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일미술교류
황정수 지음
분야: ⓵예술>미술사
⓶ 역사>문화
744쪽 / 155 × 225mm / 올컬러 /양장본
정가 50,000원
발행일 2018년 11월 30일
ISBN | 979–11–86921–65-4 03650

책 소개 : 한국 근대미술사가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
동서양 미술사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이어지고 대립하는 예술 사조와 예술가들의 영향과 극복의 기록이라 할 수 있으나 36년간 일제강점기를 거친 우리 근대미술사에는 채워지지 않은 커다란 공백이 존재한다. 대가와 거장의 작품은 오늘날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예술품 시장에서 전례 없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나 정작 그들의 젊은 시절 수학 과정이나 사제 관계, 당시 한국 미술계를 지배했던 일본인 화가들의 영향 등에 관한 연구는 거의 불모 상태로 남아 있다.
저자는 여러 해 이 분야 연구에 천착하여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해설하여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한국 근대미술사에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 맞췄다. 그렇게 지금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당시 자료를 직접 구하고 촬영한 수백 컷 컬러 도판이 삽입된 750쪽에 달하는 책이 탄생했다. 이 책은 2018년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근대 한국 미술계를 주도한 일본인 미술가들
이 책은 일제강점기 한국 미술계를 주도한 일본인 화가들의 활동을 조사 연구한 것이다. 대상은 조선총독부 통치에 협력하러 내한한 일본인 미술교사들부터 식민지 한국에서 화가로 활동하러 내한한 화가들까지 다양한 사례를 총망라했다. 또한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한국에 온 저명 일본인 화가들, 한국에 여행하러 와서 풍경과 인물을 그린 화가들까지 최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리해서 정리했다.
미술교사로 온 화가들의 활동에 관해서는 주로 지역의 공립 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조사했고, 이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평양, 대구, 부산 등의 미술 공교육 실상을 알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화숙을 경영한 일본인 화가들에 관해서는 양화속습회(洋畵速習會)라는 한국 최초의 화숙을 열고 운영한 야마모토 바이카이(山本梅涯), 조선남화원을 운영한 구보타 텐난(久保田天南), 일본인 화가들의 좌장 역할을 했던 시미즈 도운(淸水東雲), 유서회(柳絮會)를 운영한 가타야마 탄(堅山坦) 등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화가들의 삶과 작품과 영향 관계를 재구성했다.
또한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으로 온 화가들은 ‘도쿄 화파’와 ‘교토 화파’라는 경쟁 관계에 있었던 두 화파 화가들의 한국 진출과 당시 한국인들에게 끼친 영향을 살폈다.
그리고 당시 식민지 한국을 여행하러 온 많은 일본인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 화가들은 주로 경성, 경주, 평양, 금강산 등 한국의 명승지를 그리고 돌아가 작품을 일본에서 발표했다. 아울러 당시 한국인들의 풍습이나 실생활, 기생 문화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추적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살펴봤다.
그간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 화가들에 대한 연구는 주로 문헌 자료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이 책에서는 문헌 자료만이 아니라 현전하는 미술 작품을 통해 화가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당시 현실을 재구성했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화가들
식민지 한국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며 살다 간 일본인 화가들의 삶과 작품을 추적했다.
예를 들어 아사카와 노리타가(淺川伯敎)는 ‘조선 도자기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조선 도자기를 좋아했다. 그는 한국의 도자기와 민예품을 중심으로 조선민족미술관을 만들었고, 이것이 훗날 한국민속박물관을 세우는 바탕이 되었다. 그는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와 함께 한국을 사랑한 대표적인 일본인 예술가였다.
가토 쇼린(加藤松林) 역시 한국에 와서 그림을 배워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까지 지낸 화가였다. 그는 평생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만을 그렸다. 해방 후 일본에 돌아가서도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만을 그렸고, 한일 간 우호를 위해 늘 노력했다. 한일 국교 회복 이전인 1963년에는 전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정부의 초대를 받아 한국을 방문했다.
도쿠다 교쿠류(德田玉龍)은 원산에서 도쿠다 사진관을 경영하며, 평생 금강산만을 그린 화가다. 그는 금강산을 너무 사랑해서 금강산 옥룡굴에서 3년간을 숙식하며 금강산만을 그릴 정도였다.
우노 이쓰운(宇野逸雲)은 철도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서 그림을 그렸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4등상을 받는 등 빼어난 실력을 보였다. 특히 그는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이겨내고 화가로 성공한 이력이 시선을 끈다.
이처럼 이 책은 그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제국주의 일본 출신으로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했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돌아보는 흔치 않은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요한 도판 자료들
그동안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살았던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은 전해지는 것이 드물어 연구에 장애가 많았다. 한국 근대미술사에서도 일본인 화가들에 대한 설명은 대개 이름과 활동만 언급되어 있을 뿐 실제로 작품 이미지를 볼 수는 없었다. 특히 한국 화가들과 교섭이 많았던 일본 화가들의 작품조차 전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이 책에는 저자가 오랜 기간 발굴하고 수집한 도판이 다수 실려 있어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한국 풍경을 그린 일본 화가들의 작품이 대부분 한국 미술사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자료이며, 특히 정리된 80여 점의 새로운 작품은 한국 근대미술사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차례

서문 5
1장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 11
2장 경성 일본인 화가들의 중심 시미즈 토운 13
3장 야마모토 바이카이의 「눈 내린 풍경」 25
4장 야마모토 바이카이 「조선 사찰 풍경」의 서글픈 운명 57
5장 조선 풍속을 주제로 한 시미즈 토운 그룹의 그림엽서 65
6장 조선남화원을 조직한 구보타 텐난의 「묵매」 81
7장 시미즈 토운의 최제우·최시형 참형도 115
8장 일제강점기 학교 미술 교육을 담당한 일본인 화가들 131
9장 조선을 사랑한 화가 가토 쇼린 161
10장 고무로 스이운의 화집 『남선북마책』 175
11장 조선 도자기의 신,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그림 189
12장 1932년 경성의 시장 풍경, 야마구치 호슌의 「시장」 225
13장 평양의 명소 연광정, 가와무라 만슈의 「조선 풍경」 239
14장 히라후쿠 햐쿠스이의 「조선 을밀대」 261
15장 조선미술전람회 초대 심사위원 가와이 교쿠도의 「유음한화」 279
16장 가장 조선적인 일본인 화가 가타야마 탄 293
17장 문화학원 미술과 창설자 이시이 하쿠데이의 한국 인연 309
18장 마에다 세이손의 「조선 노상 풍속」 339
19장 가타야마 탄의 「구」와 김기창의 「엽귀」 349
20장 하시모토 간세쓰의 「발」 371
21장 쿠보이 스이토의 「조선의 거리」 1920년대 경성 청계천 주변 풍속 377
22장 교토 출신 화가들의 조선 풍속 목판화 그림엽서 393
23장 일본 만화가들이 조선 풍속을 그린 목판화 그림엽서 407
24장 경성의 멋쟁이 화가 히로이 고운 431
25장 탐험화가 미사코 세이슈의 「광산 풍경」 447
26장 개성의 절경 박연폭포, 레이카 가이시의 「박연폭포」 457
27장 1939년 조선에서 보낸 한 철, 야마카와 슈호의 「조선 부인」 467
28장 가와베 가도 「채반을 인 조선 부인」 493
29장 일본 근대 서양화단의 선구자 아사이 추의 한국 체험 507
30장 이중섭의 스승 쓰다 세이슈의 유화 「조선 풍경」 513
31장 가와마타 코호의 「수원아루」 523
32장 오쿠보 사쿠지로의 「의자에 앉은 조선 여인」 529
33장 일본인 남화가 11인의 『한국명승첩』 537
34장 장애를 극복한 선전의 기린아 우노 이쓰운
35장 금강산을 사랑한 화가 도쿠다 교쿠류
36장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 시마다 사이가이의 「산장 방문」
37장 금강산의 은은한 비경, 이와다 슈코의 「금강산 영원암」
38장 가와카미 코류의 「금강산 만물상」
39장 조선 고적 발굴의 선구자 하마다 고사쿠의 「고물이 잇소」
40장 진정한 고고학의 딜레탕트 시라가 주키치
41장 일제강점기 교토의 디아스포라, 한국인 화가 정말조
42장 재일 한국인 남화가 유경순
43장 일제강점기 한일 미술계의 좌장 시미즈 도운과 해강 김규진의 조우
44장 이한복과 이마무라 운레이의 교유
45장 풍운아 황철과 외팔 남화가 요시츠구 하이잔의 만남
결론

본문 중에서

1.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
현재 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소장된 일본화들은 당시 최고 수준에 있던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개화기에서 일제강점 36년에 이르는 반세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기에는 당시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들이다. 당시 총독부, 이왕가, 창덕궁 등에서 사들였지만 이들 작품은 대부분 한국에서 그려진 것도 아니며, 한국의 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한국에 거주했던 화가들의 작품도 아니다. (…) 그동안 박물관의 일본화들이 60여 년을 수장고에 숨어 있었듯이 박물관 관계자 중 누구도 일제강점기에 발표되었던 작품을 수집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기관에서 사들였던 작품의 소재조차 관리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일본과 관련된 것은 모두 사악한 것이 되어버리거나 다른 작가의 이름으로 위조되어 팔리기까지 하였다.

3. 최초의 서양화 강습소를 설립한, 야마모도 바이카이의 <눈 내린 풍경>
우리는 그동안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근대미술 형성기를 몹시 부끄러워 한 일면이 있었다. 그래서 때론 외면하기도 하고 숨기기까지 한 측면도 있었다. 물론 일제 강점의 아픔이 있었지만 문화의 전파는 역사를 넘어서는 다른 가치가 있음을 알았어야 하는데, 슬픈 역사 뒤로 문화조차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실정이었다.(…) 어떤 미술사학자의 말이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우리나라는 근대미술관이 없는 나라’라며, 근대를 너무 모른다고 하던 그의 자조적인 말이 가슴을 울린다.

7. 시미즈 도운(淸水東雲)의 최제우·최시형 참형도(慘刑圖)
<최제우 참형도>와 <최시형 참형도>는 한국인을 위한 민족정신이 담겨 있는 정신사적 단체 행동이 실패하였음을 보여주는 가슴 아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의 쓰라린 기억이 한국인 화가가 아니라 일본인 화가의 손으로 그려졌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억울한 일이다. 이 작품이 그동안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숨겨져 있었던 것도 어쩌면 해방 후 이러한 사실이 부끄러워 처박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이 그림을 마주 대하는 것도 편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이 그림에 의미가 있는 것은 당시 동학과 관련된 특별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과 전에 걸려 있던 작품을 다시 그렸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한국미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미즈 도운의 당시 활동을 짐작할 수 있는 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인물화를 잘 그렸다고 전해오는 화풍의 모습을 처음으로 실제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17. 문화학원 미술과 창설자, 이시이 하쿠데이(石井柏亭)의 한국 인연
이시이 하쿠데이는 일본에 유럽의 서양화를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일본미술계의 거목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일본 미술계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한국 화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18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래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과의 인연을 쌓는다. 공적으로는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를 맡기도 하고, 사적으로는 여러 한국의 문화 인사들과 교분을 쌓으며 친한파(親韓派) 미술인으로 많은 활동을 한다. 그의 한국과의 인연은 일본에 돌아가서도 이루어지는데, 1921년 문화학원이 창설되며 더욱 분명해진다. 1925년 문화학원에 미술과가 만들어지고 그가 미술부장을 맡게 된 것이 결정적이다. 한국 유학생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며, 그는 자연스레 이들의 지도 선생이 된다. 이 때 이후 만난 제자들이 이중섭, 유영국, 문학수, 김병기 등으로, 이들은 훗날 한국 미술계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그는 이들 한국 유학생들에게 음양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46. 일제강점기 한국미술사에 대한 제언
36년간 얼마나 많은 일본 미술인이 한국에 왔을까? 또 그들은 어떤 활동을 했을까? 그들의 정책과 교육에 한국인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이런 의문을 풀려면 당시 한국에 거주하였거나 미술 활동을 했던 적이 있는 미술인들을 파악하고, 그들의 작품 활동이 어떠하였고, 실제 그들의 작품이 어떠하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미술사학자는 대부분 이러한 연구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러한 연구를 비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일부 화가들의 친일 문제를 연구하면서도 한국에 권력을 행사한 일본 미술인들의 작품에 대해 논하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피해를 알려면 가해자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일제강점기 한국미술사는 반토막 미술사이다. 당시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서 출세하고자 했던 대부분의 한국 미술가들은 전람회를 기획한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렸고, 그들에게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당연히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에는 일본 미술인들의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시 일본인 작가들이 한국 작가들에 비해서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 근대미술의 최고봉인 고희동, 허백련, 이상범, 김은호 등등 대부분의 화가들은 다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영향을 받은 일본인 작가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그러니 한국 화가들의 작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아는 데에 한계가 있다. 김은호의 작품이 왜색이 강하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이 없다. 대부분 솔거처럼 천부적으로 타고 나서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중섭이나 이인성을 연구하는 데 그들 선생의 작품과 연계해서 연구하는 작업도 거의 없다.

저자 소개
황정수(黃正洙)
미술 애호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나 미술과 인연을 맺어 미술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특히 한국의 근대 미술과 일제강점기 한일 간 미술 교류에 관심이 많다. 근래에는 근대기 서울에 살던 미술가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으며, 도시와 건축 등 환경 미술에도 관심이 많다. 아울러 근대 초기 미술가들이 갖춰놓았던 미술 환경이 후대 미술가들과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현재 『오마이뉴스』에 근·현대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의 흔적을 톺아보는 「서울미술기행」을 연재 중이며 저서로 『경매된 서화』(공저, 시공사, 2005)가 있고, 논문에 「소치 허련의 완당 초상에 관한 소견」 『소치연구』(창간호, 2003) 외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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