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앞에 선 철학자들

폭력표지web

사르트르에서 데리다까지

마크 크레퐁 & 프레데릭 웜 지음
배지선 옮김
분야: 인문 – 철학, 서양철학
208쪽 / 130×190mm
정가 13,000원
발행일 2017년 4월 10일
ISBN | 979–11–86921–39–5 03160

폭력 앞에 선 철학과 철학자의 역할

세계대전의 비극을 벌써 잊은 듯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고, 모두가 테러 위협 속에서 살아가며, 국민에 대한 공권력의 가해 행위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이처럼 일상이 되었으나 흔히 그 심각성을 간과하는 ‘폭력’의 본질을 규명하고, 폭력 사용의 한계를 탐색하며, 폭력의 가해자에 대한 희생자의 용서와 화해 가능성을 살피며, 폭력에 맞서 때로 행동으로 저항했던 사르트르부터 데리다까지 열두 명 현대 철학자의 사상과 논쟁과 투쟁을 프랑스의 두 젊은 철학자가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제 식민지기와 군사독재기 폭력으로 얼룩졌던 슬픈 역사에서 위안부, 사상범, 공권력에 희생된 시민 등 폭력이 남긴 상처가 아물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폭력 앞에 선 철학과 철학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통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얼마 전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허락 없이 임의로 가해자 일본과 ‘돈을 받고 해결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래 대목은 새겨볼 만하다.

“요컨대, 누가 희생자를 대신해서 용서를 공언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정치가가 희생자들에게서 용서할 권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끔찍한 범죄의 흔적이 ‘기억에 암’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적 권위에 준거해 용서에 동의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고통이 서려 있는 묘비명처럼 간결한 장켈레비치의 이 문장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용서는 사람들이 죽어간 집단수용소에서 이미 죽었다.”

철학, 폭력을 말하다

저자가 말하듯 1980년대 인문학계에서는 ‘역사와 철학의 종말’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지속될 뿐 아니라 과거 어느 때보다도 폭력적인 양상을 띠고 있고, 이 폭력적인 세상을 이해하는 데 어느 때보다도 철학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실제로 폭력 문제는 여러 분야에서 논의된다. 도덕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정치 분야에서 그러하다. 예를 들어 국가는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할 권리가 있는지, 어느 지점부터 타자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할 권리가 생기는지,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은 실제로 가능한지 등의 성찰은 곧 본질적인 자유의 문제로 이어지고, 인간 본성에서 그 근본을 살피게 된다. 그래도 논의의 외연을 너무 넓히지 않고자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폭력 문제를 특정한 시기에 한정해서 살펴본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부터 프랑스 5월 혁명이 일어난 1968년 사이에 벌어진 폭력적 상황과 이에 맞서 사유하고 행동했던 열두 명 대표적인 현대 철학자의 사상을, 그리고 그들 사이의 논쟁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물론 이 두 시점은 현대 철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1943년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가 출간된 해로, 사르트르는 여기서 존재와 의식의 문제를 성찰하면서 그가 이후에 천착하게 될 ‘참여’의 철학적 토대를 닦았다.

사르트르에서 데리다까지

저자는 전쟁 후 정치 문제에 천착한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존재와 무, 자유 개념에서 출발하여 그가 부조리와 저항의 철학자 카뮈와 왜 그리고 어떻게 대립했는지 살펴보며 담론을 전개한다. 이어서 어떤 경우에 폭력을 수용해야 할지 그 필요성을 고민하며 논쟁적 저서를 출간한 메를로-퐁티, 절대적 평화와 필연성의 경험을 강조한 카바이예스, 나치의 폭력 앞에서 절대적 평화주의를 포기해야 했던 시몬 베유, 캉길렘, ‘다양성’을 통해 인간을 새롭게 사유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인간의 역사, 사회,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한 레비-스트로스 등의 사유를 소개한다. 아울러 형이상학과 정치 문제에 천착한 들뢰즈, 감시와 감금 문제를 통해 폭력을 분석하고 권력의 본질을 새롭게 통찰한 푸코, 형이상학과 윤리의 관계에 주목한 레비나스와 이에 대한 엄정한 독해를 통해 또 다른 비판적 관계를 모색한 데리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장켈레비치, 그 사유의 패러다임을 해체하며 궁극의 윤리를 모색한 데리다 등 이 책의 저자는 ‘폭력의 시험에 든’ 철학의 사명, 철학자들의 역할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폭력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역사는 과거의 어떤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적인 어떤 것으로 지금 이 순간 우리와 관계를 맺으며 변화한다. 이처럼 기억과 성찰은 중단 없이 계속된다. 철학은 우리에게 사유와 행동을 촉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역사의 관계를 조명하고, 행동을 통해 정치에 개입하며, 이념과 체제의 광기에 저항하고, 이를 분석하며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오늘날에도 탈식민화에서 비롯한 갈등, 종교적·이념적 대립, 무력 혁명, 원자력, 테러 등 현실적으로 폭력적인 상황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들은 전후 세계를 어떻게 성찰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들은 어떻게 서로 대화하고 공감하고 대립했으며, 그 대화가 어떻게 들뢰즈, 데리다, 푸코, 레비나스 등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에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이 책의 특히 흥미로운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성격의 폭력도 용납하지 않았던 카뮈와 대립한 사르트르가 ‘고문’과 ‘테러리즘’을 같은 차원에서 간주하지 않았던 이유는 오늘날 일어나는 대형 테러 사건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고, 나치의 폭력에 희생되었던 유대인들이 그 야만성을 어떤 언어로도 용서할 수 없고, 국가가 실제 피해자를 대신해서 ‘정치적으로’ 가해자와 화해할 권리가 없는 이유를 설명한 장켈레비치의 담론과 그에 대한 데리다의 해석은 최근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와 무관하게 가해자와 합의했던 한국 정부의 행태가 얼마나 무모하고 저열했는지 실증적인 깨달음을 준다.

이처럼 이 책을 통해 철학자들 각자가 성찰한 존재의 문제와 정치적 입장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거나 대립하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폭력이 상존하는 오늘날 우리가 폭력을 어떻게 파악하고, 폭력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며, 특히 ‘철학자’라는 이름의 지성인들에게 어떤 과제가 부과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5

머리말 – 폭력 앞에서 철학은? 9

서론

  1. 폭력 앞에 선 철학자들(FW)15
  2. 정치의 시험,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MC) 20

1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I 사르트르, 카뮈

  1. 『존재와 무』(FW) 29
  2. 고문과 테러리즘, ‘피의 궤변’(MC) 45

II 카뮈, 메를로-퐁티

  1. 부조리, 반항, 세계(FW) 59
  2. 쟁점이 된 폭력(MC) 74

III 시몬 베유, 캉길렘, 카바이예스

  1. 시험에 든 평화주의 (MC) 87
  2. 필연성의 경험 (FW) 100

2부 1960년대

IV 레비 스트로스,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1. 다시 생각하는 인간의 다양성(MC) 113
  2. 구조, 실존, 역사(FW) 125

V 푸코와 들뢰즈

  1. 형이상학적·정치적 비판, 구조와 차이 사이(FW) 139
  2. 용인할 수 없는 감금(MC) 150

VI 장켈레비치, 데리다, 레비나스

  1. 윤리학과 형이상학, 환원 불가능한 차이(FW) 163
  2. 불가능한 용서(MC) 176

결론

  1. 오늘날 철학의 과제(FW) 189

2.세계에 대한 염려(MC) 195

옮긴이 말 – ‘철학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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